프론티어를 따라가며 내 취향을 학습시키는 일
프론티어 모델을 따라가다 보면 자주 멈춘다.
어제 모르던 것이 오늘 상용 서비스가 되어 있고, 내가 정성껏 배운 것이 며칠 뒤 더 좋은 형태로 모델 안에 흡수된다. 따라간다는 감각 자체가 흔들린다.
이 흔들림 앞에서 사람에게 남는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. 최근 이 질문이 반복적으로 돌아왔다.
capability overhang 앞의 두 갈래
AI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. 프론티어 모델의 잠재력이 실제 활용보다 훨씬 앞서나가는 상태 — 그걸 capability overhang이라 부른다. 이 간극 앞에서 도망갈 수 있는 두 갈래 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. 팟캐스트와 외부 아티클에서 나온 프레임이었다.
첫 번째는 번역의 길이다. 프론티어 모델은 강해지지만, 아직 아무도 그 기술을 일상 업무로 번역해주지 않은 고객이 훨씬 더 많다. 모델이 직접 서비스하지 않는 연결부와 맹점을 찾아, 그 사이를 제품으로 메우는 길.
두 번째는 도메인 침투의 길이다. AI for Science, personalized precision medicine 같은 깊은 전문 도메인으로 들어가, 도메인 지식과 AI를 결합해 그 분야의 루프 자체를 닫는 길. 생명공학, 재료과학, 신약 개발처럼.
두 도망길은 같은 출발점을 갖는다. 프론티어 그 자체와 경쟁하지 않는다. 프론티어가 아직 닿지 못한 곳, 혹은 닿아도 당분간 흡수하지 않을 곳을 먼저 차지한다.
첫 번째 도망길 — 모델이 줍지 않고 지나가는 자리
첫 번째 도망길이 내게 더 가까이 보이는 이유가 있다.
이미 매일 쓰고 있다. Claude Code, Codex, agent harness, workspace 경계 설계. 이 감각은 모델 회사가 직접 만들어주지 않는다. 고객마다 다른 업무 흐름과 권한 구조를 하나하나 번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.
예를 들면 중견기업 경영진에게 필요한 것은 GPT가 아니다. 메일, 일정, 회의, 보고, follow-up이 보안과 승인 구조 안에서 묶인 운영 시스템이다. 모델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운영 하네스를 파는 일. executive operating system에 가까운 형태.
이 방향은 내가 이미 쌓고 있는 감각 위에 올라간다. 지금 내 workspace에서 해오던 개인·회사 도메인 분리, brain-hand decoupling, 경계 설계가 그대로 제품 자산이 된다.
두 번째 도망길이 내게 멀어 보이는 이유
두 번째 길도 매력적이다. 생명공학, 재료과학처럼 인간이 쉽게 읽지 못하는 도메인에 AI가 먼저 들어가 루프를 닫는 장면을 보면, 이 자리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.
근데 멀다.
두 번째 길은 도메인 지식이 먼저 필요하다. 수십 년 전문 경험이 있거나, 그 경험을 가진 사람과 깊이 협업해야 한다. wet lab을 실제로 운영하고, 임상 데이터를 읽고, 후보 물질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. 내가 지금 가진 것과는 다른 축의 자산이다.
그래서 이 길은 장기 투자 옵션으로 두고 싶다. 지금 당장의 주력 경로는 아니다. 지금은 첫 번째 도망길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.
attention business와 취향
두 길을 비교하다 보니 더 본질적인 질문이 남았다.
어느 길을 가든,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다. 프론티어는 계속 강해질 것이다. 따라가는 일 자체가 나의 부가가치가 되지는 않는다.
그럼 뭐가 남는가. 팟캐스트에서 나온 표현인데, attention business가 이걸 설명했다.
정보 과잉 시대에, 무엇을 볼지 무엇을 버릴지, 어떻게 자기 attention을 배치할지의 총합이 그 사람의 가치가 된다. 취향이 의사결정이 되고, 의사결정이 출력이 되고, 출력이 사람의 흔적이 된다.
내가 Claude를 매일 쓰고, Anthropic 뉴스를 따라가고, agent harness를 직접 설계하고, 그 과정을 글로 쓰는 것은 단순히 공부가 아니다. 어디에 시선을 두는지에 대한 선택이 반복되고, 그 선택의 누적이 내 위치를 만든다.
나의 LM head — 바깥으로 드러나는 선택
이 감각을 LLM 공부 02편에서 정리한 LLM 구조와 맞대어 보면 이상하게 맞아떨어진다.
사람에 대응해보면 이렇게 된다.
- 내 파라미터는 지금까지 내가 보고 쓰고 만든 모든 것의 총합이다. 계속 튜닝되고 있다.
- 내 hidden state는 지금 이 상황을 나만의 맥락으로 해석하는 중간 계산이다.
- 내 LM head는 그 해석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선택이다. 글, 코드, 말, 기획, 디자인, 옷, 말투.
LM head는 다음 token 하나를 가리킨다. 나의 LM head는 지금 이 순간의 내 선택을 가리킨다. 그 선택이 누적되어 "나라는 사람 자체"가 된다.
정리 — 취향을 학습시키는 일이 나의 fine-tuning
프론티어를 따라가는 일은 결국 내 파라미터를 계속 튜닝하는 일이다.
Claude의 구독료, Codex의 토큰, Anthropic의 발표, 매주 새로 나오는 도구 — 이것들을 읽고 써보고 판단하는 매일의 작업이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다. 어디에 시간을 두는지, 무엇에 실망하는지, 무엇을 건너뛰는지가 나의 fine-tuning 신호다.
그리고 그 튜닝의 결과가 내 LM head에서 출력된다. 바깥으로 드러나는 모든 선택 — 글, 제품, 브랜드, 커리어의 다음 움직임 — 이 나라는 사람을 가리킨다.
capability overhang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지 않는 방법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.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, 내가 어디에 attention을 두는지를 계속 선택하는 것. 그 선택이 쌓이면 취향이 되고, 취향이 쌓이면 나의 출력이 된다.
결국 취향을 학습시키는 일이 나의 fine-tuning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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